럭키: 전환된 삶, 다시 태어난 정체성, 운명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
|
| 엑시트 |
2019년 엑시트가 개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10년 중 가장 뚜렷한 한국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상근 감독이 연출하고 조정석, 임윤아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스릴 넘치는 '재난 코미디' 콘셉트뿐만 아니라 초현대적 컬트와의 깊은 감정적 공감으로 돋보였습니다. 호슬로우 아래 옥상 추격전, 눈에 띄지 않는 가스 공격의 아찔함이 그 순간 청춘의 고난, 시위, 조용한 절망, 성공만이 가치 있는 사회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절망적인 갈망 등을 날카로운 해설로 담고 있습니다. 엑시트의 핵심은 거부, 수치심, 이루지 못한 꿈의 순환 속에서 삶의 쐐기를 박는 실직 청년 용남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열정적인 보석 같은 횡설수설하던 그는 이제 일자리나 목적을 찾기에는 부적합한 음치 불신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가스가 서울을 집어삼키자 잊혀진 그의 갈비뼈가 갑자기 생존의 생명줄이 됩니다. 물리적 위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이상의 이야기는 무능에서 음치 구원으로 향하는 감정적이고 열대적인 상승입니다. 유머, 액션, 감동적인 인간미를 통해 벽이나 둑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기대와 실패의 무게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포착한 EXIT. 단순한 재난 이야기일 수도 있었던 것을 숨막히는 세상에서 숨을 쉬려는 세대의 감동적인 성찰로 전환하여 진정성과 진정성의 균형을 맞춘 영화입니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부터 엑시트는 암묵적이지만 제한된 오프닝의 무게에 짓눌린 초현대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경험을 묘사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조정석이 원초적인 진정성을 지닌 용남 역을 맡은 것은 이러한 환멸의 상징입니다. 과거에는 의회에서 유망한 운동선수였지만, 그의 현재 현실은 취업 면접 실패, 어색한 가족 잔치, 무익한 무익함의 연속으로 암울합니다. 사촌에게 애무당하거나 부모님에게 혼나는 장면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 근처에서 슬프게 몰아칩니다. 하지만 EXIT는 단순히 불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머와 관계성을 투쟁 속에서 찾습니다. 영화의 초기 회랑은 가족 모임에서 예의 바르게 웃는 모습, 실직의 당혹감, 사라지는 야망의 암시적 외로움 등 현실을 응시하는 어색한 코미디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재난이 닥치는 순간, 오랫동안 묻혀 있던 용남의 본능이 모두 돌아옵니다. 예전에 포기했던 산의 횡설수설하는 사람이 이번에는 명령이나 축복이 아니라 단순히 살기 위해 다시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의 용기 감지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이며, 긴장된 근육 하나하나, 난간을 잡을 때마다 절망적인 태도는 음치 불신의 시대에 맞서는 작은 도전 행위를 나타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엑시트는 액션 영화를 넘어 세상이 더 이상 보지 못할 때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비유가 됩니다. 용남의 부상은 무시당하거나 비하하거나 눈에 띄지 않게 만든 모든 젊은이의 부상입니다. 용남의 변신은 아이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믿을 수 있는 권리를 되찾는 것입니다.
엑시트의 가장 놀라운 성과 중 하나는 시민 스카이라인을 핸디캡이자 기회로 재정의하는 '직교적 행동'을 훌륭하게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익숙하고 일상적이었던 서울의 거대한 규모는 매 걸음마다 위험으로 가득 찬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우뚝 솟은 미로가 됩니다. 용남과 의주가 측정해야 할 각 구조물은 정해진 조각 이상의 것으로, 불확실하고 위협적이지만 결국 변혁적인 다수의 급격한 상승을 위한 자만심입니다. 영화의 속도는 두려움과 인내의 척도를 모방하도록 엄격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안전에 도달했다고 가정할 때마다 다른 구조물이 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또 다른 벽을 측정해야 합니다. 아래의 가스가 천천히 거대함을 억누르고 철저한 거리를 죽음의 덫으로 바꾸어 주인공들을 머리 위로 밀어 넣습니다. 답답한 땅에서 해방된 하늘로 이어지는 이 수직 여행은 그들의 내면적인 정교함을 보여줍니다. 아침이 되자 용남과 의주는 모두 무직이고 불안정한 수동성으로 정의되며,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운 케이터링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그들은 서브캐스트에 의해 가려진 두려움을 제거합니다. 조정석과 임윤아의 케미스트리는 영화의 감정 기계입니다. 이들의 역동성은 강제적인 사랑보다는 집단적인 존중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계산하고, 두려움을 통해 농담을 하며, 영화 속 진정한 인간의 협력에서 드물게 느껴지는 일종의 연결고리를 구현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인 두 사람은 죽음의 안개 위 크레인에 매달려 열정이 아닌 생존을 위해 서로를 붙잡고 있습니다. 붕괴하는 세상 속 연대의 이미지인 시각적, 정서적 승리입니다. 영화적 관점에서 엑시트의 액션 시퀀스는 감동적이면서도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승할수록 말 그대로와 직접 모두 공기가 맑아집니다. 질식을 상징하던 거대함은 해방의 공간으로 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엑시트는 단순한 물리적 재난뿐만 아니라 내면의 뼈를 탈출하는 것에 대한 서정적인 진술이 됩니다.
엑시트는 화학 가스 재앙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영화의 가장 소름 끼치는 위험은 공기 중의 눈에 띄지 않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초현대 현실의 중요성을 정의하는 무관심과 퇴위의 감정적 골칫거리입니다. 실제로 재앙이 시작되기 전, 용남은 톤 불신과 실망의 무게에 질식하고 있었습니다. 가스는 이전에 있던 것, 즉 이루지 못한 꿈과 끊임없는 실패의 눈에 띄지 않는 질식의 화신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엑시트를 자만의 걸작으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진정한 싸움은 독한 스모더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맞서는 것입니다. 용남의 여행은 자신의 가치가 고용 상태나 사회적 축복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반항입니다. 용남이가 싸우는 모든 숨결은 오랫동안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대함이 주변에 무너지면 그는 뛰어내리지 않고 앞으로 올라갑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회가 훔친 품질의 상품을 되찾습니다. 영화는 또한 완벽함과 외부 확인에 집착하는 문화를 미묘하게 리뷰합니다. 연기를 선택하는 두 로버와 무력한 군중을 달리함으로써 엑시트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을 기념합니다. 초능력이나 영웅이 아니라 지략, 협력, 연속성이 그들을 구해줍니다. 영화의 유머와 성기는 압박감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말이 반항적인 행동이 될 수 있음을 관찰자들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엑시트가 그렇게 치명적인 이유는 두려움과 취약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용감하지 않아서 놀랍니다. 하지만 어쨌든 움직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용기에 대한 가장 순수한 묘사일지도 모릅니다.
댓글
댓글 쓰기